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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

공개·회원 1명

창세기 46장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 근거해야 합니다(46장 묵상).


야곱은 그토록 사랑하였던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되어 살아있다는 말을 듣었지만 그는 먼저 브엘세바에 가서 희생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브엘세바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아브라함은 땅을 한 평도 갖지도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우물을 팠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입니다(21:33).


우물을 판다는 것은 정착한다는 뜻입니다. 수명이 길고 단단한 에셀나무를 나무를 심은 이유는 하나님과 언약의 견고함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분께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우물이 정착의 의지의 표현이라면, 나무를 심는 것은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이는 경계의 표시입니다. 곧 브엘세바는 영생하시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땅이라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거했습니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다가 되돌려 받은 곳이며 모리아에서 돌아와 대대로 거주한 곳이었습니다(창22:19). 그리고 하나님은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을 바로 이곳에서 재확인시켜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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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0장

하나님의 뜻이 서기 위해서 사람의 뜻은 꺾여야 합니다(창 40장 묵상)


원래 인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하나였습니다. 이 완전한 순종의 상태를 안식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사람이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여 하나님처럼 되려 했고, 자신들이 최종 목적이 되려고 범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자기를 실현하려는 인간들이 추구는 그 어떤 것들로도 결코 만족과 안식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족과 안식은 하나님안에 있기 때문에 어떤 도모도 헛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탐욕에 근거한 사람의 뜻과 야망을 꺾으시고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를 이끄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삶 속에는 항상 고난이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고난은 이유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의 목적은 연단을 위한 것이며, 연단은 부족한 것이 없는 완성을 위한 필연적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기대는 무너져야만 했습니다.


요셉이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혔을때 거기에서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들이 꾼 꿈을 요셉이 해석해주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은 사흘 만에 복직을 하였고 떡 맡은 관원장은 목이 달려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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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9장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창39장 묵상)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애굽의 시위장관 보디발의 집 노예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가장 사랑받던 자식이 종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이 함께 계셨기 때문에 거기서도 형통하였습니다.


상식적으로 형통했다면 노예로 팔리지 않았어야 하지만 형통은 사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도 그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아보고 전권을 맡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은 따랐습니다.


그 주인의 음란한 아내가 날마다 요셉에게 동침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께 득죄할 수 없어 완강히 청을 거절했는데 이 일로인해 요셉은 도리어 모함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선하게 살려고 애썼는데 결과는 도리어 더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감옥에 갇혀버린 상황조차 요셉이 ‘형통’했다고 말합니다. 형통이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계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 하였도다’(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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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8장

다말을 통해 나타난 구속사의 영광(38 장 묵상)


37 장은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계시되고 그의 팔려감으로 인해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는 구속사의 전 과정이 바로 요셉의 버려짐과 수난이라는 모형속에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유다가 가나안여인을 취하여 자녀를 낳고 며느리 다말과 동침하여 자손을 얻는 사건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갑자기 유다의 이야기로 전환한 것은 요셉과 함께 구속사의 한 측면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혈통을 지키도록 요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이삭의 신부를 구하기 위해 하란까지 보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을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보를 지켜야 했습니다.


따라서 유다의 일탈로 낳은 가나안 후손은 죽어야 했습니다. 유다는 세 아들을 낳았지만 하나님은 장자 엘을 죽이십니다. 성경은 그가 악을 인해 죽었다고 했으나 실은 거룩한 계보에 부적격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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