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기억처럼
차창 밖을 지나치는 풍경처럼 문득 삶도 이렇게 자리를 뒤에 남겨둔 채 지나가는 여행자의 기억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알 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쓰던 물건과 자주 입던 옷가지나 낯익은 집과 가재도구들도 더 이상 곁에 있지 않고 지나온 시간속에 두고 왔습니다.
분명 그때도 나였건만 그 때 생생하던 사람과 주변은 더 이상 사라지고 우리는 어느 새 또 다른 사람들과 웃고 만나고 있으며 새로운 물건과 다른 옷을 입고 다른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삶의 길목에서 또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무대에서 숱하게 만나고 지나쳐 가게 될까요? 마침내 순례의 길을 마칠 즈음에는 어느 낯선 곳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게 될까요...
아! 지나쳐 온 삶과 기억들은 얼마나 무상하며 되돌릴 수 없어서 더욱 허망한지요! 이렇게 지나치고 있는 현재는 또 다시 기억이 되어 한 바탕 꿈처럼 잡히지 않는 피안속으로 흘러 보내 질 것입니다.
삶이 길이 아니라면 인생의 마지막은 얼마나 허무할까요! 단지 걸으면서 겪는 일이 전부라면 늙을 수록 초라해져도 인생을 걸고 목적한 곳에 이르는 과정이라면 죽음은 삶의 정점입니다.
길은 걸은 만큼 목적지에 가까운 것이라서 살아갈 수록 의미롭고 보상받을 기대감과 성취감으로 풍요로우며 고상해질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넓은 길보다 목적지를 향하기 때문에 만들어가는 길이 아름답고, 쉽고 편한 길보다 좁고 험해도 그리로 향한 길이라면 반갑습니다. 순례자의 마음은 이런 길 위에서만 행복합니다.
오늘, 우리의 순례자들은 어떤 길 위에서 갈길을 재촉하고 있는지요.. 주님은 준비하신 처소를 가꾸며 우리를 얼마나 기다리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