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선 양의 발자국 하나



알려진 대로 양은 시력이 나쁜 짐승입니다.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무기나 방어기재조차 변변치 않은 그야말로 약한 짐승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양으로 부르셨습니다.

목자는 때를 따라 양들이 먹을 초장을 찾아야 합니다. 그때마다 양들은 아직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나섭니다. 양들은 우왕좌왕해도 나이 든 양들은 묵묵히 따릅니다. 아직 잘 보이지 않아도 목자의 음성이 들리는 한 분명히 새로운 물가와 초장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눈으로는 목자가 가리키는 곳을 다 볼 수 없어도 믿음으로는 목자가 향하는 곳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낯설어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는 않습니다 익숙한 초장은 잃었어도 목자를 잃은 것이 아니니까요

양들은 약해도 살아남는 기재가 그들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목자의 음성을 구별해 내는 것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

양들이 따르는 좌표는 항상 목자의 음성입니다. 자기들의 시각과 달라도 목자의 음성을 따릅니다.

보고 행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데서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 보이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듣고 있는 목자 되신 주의 음성을 다만 좇을 뿐입니다. 지난 후에는 늘 그것이 최선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조회수 16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이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사 언제라도 그들이 회심하여 자기 죄들을 용서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마가복음 4:12)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치 아니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28-30) 주님이 “안식(구원)”을 위해 내게 오라고 하신 것은 사람이 수고와 짐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인생을 살기 위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