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회장의 24가지 질문



▷ 표가 붙은 것은 신부의 대답이고

○ 가 있는 것은 교회의 대답입니다.


1.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다(공기, 소리), 가청의 한계가 있다.

그것은 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다.(코끼리 몸을 기어다니면서 이차원적인 인 식밖에 못하는 것이지 코끼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 개미가 코끼리의 부분을 느끼듯 인간은 신을 부분적으로만 느낀다. 신은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다. 3차원이 11차원(우주의 차원)을 다 모르고 흑백TV로 3D칼라TV를 수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 증명의 대상이 아닌 믿음의 대상이다. 사람이 부정할 수 없는 신의식을 심으셨다.

사람의 이해의 범위안에 있고 형상화가 가능하면 이미 하나님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우월하고 선재하며 보이는 것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2. 신은 우주만물의 조물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나?


▷ 태초의 말씀(존재원리)이 섬세한 질서를 말한다. 그 질서의 근원이 창조주이다. 신의 존재는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의 문제다. (최민순 신부의 일화 ‘꽃의 아름다우심을 본다’ 우주의 철리가 뚫리는 기분이었다. 만물의 아름다움이 아름다우신 분이 아니면 누가 만들 수 있겠는가? 체험이 자신에겐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 되는 것이다.


○ 대답이 물음에 적합지 않다. 그는 객관적인 증거를 요구하고 있다. 존재의 기원은 창조거나 우연이거나 이 둘 밖에 없다. 물리법칙은 에너지가 밖에 주어진 것임을 말하고 주어진 에너지는 소멸되고 있으며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낡아지고 있는 것이다. 만물은 이 정교한 질서와 강한 힘으로 유지되고 있고 이것은 저절로 결코 일어나지 않는 물리적 법칙으로 볼때 고도의 지적 존재가 만물의 기원에 개입되었음을 보여준다.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이 아닌가?


▷ 장회익 서울대 물리학교수와 대담에서 ‘신이 인간을 빚었나?’ 는 질문에 대해 흙으로 빚었다는 표현은 3차원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오랜 세월 진화의 과정을 흙으로 빚었다는 말로 축약할 수 있다. 진화론은 창조론의 울타리 안에 포함된 개념이며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변화하는 지구의 환경에 생존하는 과정에 있는 진화는 인정해야 한다.


○ 이것도 적절한 대답이 아니다. 그가 물은 것은 사람의 생명이 생물처럼 진화된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진화라고 말한 것은 종의 변화가 아니라 종간 잡종을 말한 것 같은데 진화를 창조에 교묘히 끼워넣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 대답은 기원을 말해야 한다. 진화는 기원론이 아니다. 둘째, 사람이 되다만 원숭이나 비슷한 화석이라도 있는가? 아직도 종간 진화는 추측일뿐 화석으로 발견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셋째, 사람이 물질에서 나왔고 우연과 돌연변이의 산물이라고 양보해도 사람의 영혼은 설명할 수 없다. 사람의 본성은 자신을 짐승에게 빗댄 것을 욕으로 여긴다. 이성은 그렇게 믿고 싶어도 본성이 사실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것이다. 또 물질,우연의 산물이라면 도덕과 양심과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이 설 자리가 없게 된다.



4. 언젠가 생명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 미국과학자의 40%는 80년 동안 엄청난 과학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신론자들이다. 과학과 종교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발달 할수록 신의 섭리가 더 명쾌하게 증명될 것이다. ‘약간의 과학은 신과 멀어지게 하나 더 많은 과학은 인간을 다시 신에게 돌아가게 한다.’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 어쩌면 우리가 신을 사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바로 고통이다. 신은 우리를 때로 돕 고자 그분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信, 不信?) 고통 뒤에 선택이 있고 선택 뒤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손을 불에 넣으면 데듯이 고통은 자유의지를 잘못 썼을 때 찾아온다. 섭리의 궤도를 벗어 날 때 찾아온다. 고통은 그 섭리를 찾으라는 일종의 경고사인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 형극은 오히려 회복을 위한 장치였고 삶의 수고와 한계, 죽음의 개연성은 삶을 초월한 영원하신 하나님을 찾도록 만든다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나? (히틀러, 스탈리, 흉악범등..)


▷ 신은 악인을 만들지 않고 자유의지를 주셨을 뿐이다. ( 부부관계가 신뢰와 자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지만 엉뚱하게 쓰는 이들은 악이 되는 이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