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두려운 일

요즘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잠시 오르는 산 언덕은 차마 들어서기가 황송 할 정도입니다. 죽은 듯 섰던 나무가 피어내는 신록의 감동은 표현의 빈곤과 언어의 한계 때문에 한숨이 나올 지경입니다.

늘 보던 풀 같으면 이런 감동은 없었을텐데 엄동설한을 지나면서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잊었을 때 저렇듯 싱그럽게 살아나는 기특한 생명력에 반가움과 감탄이 더한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 덤덤히 서있는 나무도 실은 그 안에서 치열하게 새 생명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까 살아있다는 것은 미처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어도 시효를 다한 세포가 소멸되는 동안 끝없이 새로운 세포가 생성되었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사실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우리 영혼도 새 창조의 빛이 명하여진 이래로 여전히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의 역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자기 안에 하나님의 창조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요 사망은 이 말씀 안에 있는 빛이 창조의 역사를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경직과 어둠과 질병과 죽음은 새 창조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마음의 상태이지 결코 노쇠의 결과가 아닙니다. 영혼은 노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금새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두려운 것은 자신과 타협하는 것입니다.

빛이 아닌 꼼수와 견해를 따르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새 창조가 멈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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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사 언제라도 그들이 회심하여 자기 죄들을 용서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마가복음 4:12)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치 아니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28-30) 주님이 “안식(구원)”을 위해 내게 오라고 하신 것은 사람이 수고와 짐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인생을 살기 위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