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간증

박OO


안녕하세요. 박00 자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미천한 자의 삶을 이끌어 주셨는지, 이 간증을 통해 이 시간에 또 어떤 일을

하실지 감사드리게 됩니다.

모처럼 구원간증을 정리하다 보니,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유년시절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전라도 진도에서 자랐습니다

앞에는 넓은 평야가 있고 뒤에는 높은 바위산과 바다가 있어 아름다운 자연과 높은 바위산에서

내려다보는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자랐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창과 육자배기를 즐겨하셔서 “우리 강아지아, 대야 가져오니라” 하시면 대야를 북삼아 창을 들려주시곤 했고 어린 저는 그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며 그렇게 자랐습니다.

저희 집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동네의 친했던 언니가정들은 교회를 다녔고 어린 저를 위해 기도도 해주었습니다. 광주에서 신학대학을 다니던 고모가 여름방학 때마다 신학생들과 함께 우리 동네 작은 교회에서 여름 성경학교를 열고 찬양, 게임, 성경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해주어 해마다 여름 방학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모를 통해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땐 그게 당연한 걸로 알았습니다.

농사일로 바쁘신 부모님대신 할머니께서는 1남 4녀 손자들에게 잠잘 때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렸을 적 할머니의 쉬지 않고 기도하시고 찬송하셨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교육열이 높으셨던 할머니께서는 고모님이 살고계시는 서울로 부모님과 동생들을 먼저 올려 보냈습니다. 저와 바로 밑 동생은 부모님과 잠시 떨어져 할머니와 살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올라와 고모가 다니는 교회를 다니며 중고등부 성가대 활동을 했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를 통해 들었던 음악의 영향인지 찬양을 하면 참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갈수록 교회를 다녀도 마음이 편치 않고 죄책감이 커져 갔습니다. 주일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면 죄가 씻어진듯한데 교회를 나서는 순간 답답한 현실과 그 속에서 온전히 살고 있지 못한 제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평안을 얻는다고 했는데 나는 열심히 하는데 결과는 노력만큼 나오지 않고, 직장을 다녀도 나쁜 상사만 만나고, 그런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 내 답답한 처지에 대한 한탄 속에 죄책감이 커져 갔습니다. 그 속에서 주님께 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은 대답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른 게 없잖아’ 이런 수 없이 많은 질문을 하다가 지쳐 낙심하고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을 찾지 않을 거야’ 저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말았습니다.

결혼 전 제 인생의 중심이자 선생님이셨던 할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죽음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가족을 위해 교회를 위해, 가족들과 함께 교회 가는 것이 소망이고 기쁨이라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임종하신 할머니 귀에 대고, “할머니, 제가 열심히 하나님을 믿을게요” 말했지만, 할머니를 데려가신 하나님이 미워 세상 속에서 방황하였습니다.

할머니의 임종 후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또 다른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작은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부도나고 연대보증을 해주었던 아버지에게 채권자들이 들이 닥쳤습니다. 집은 넘어가고 남동생은 군에 입대하고 부모님과 4남매는 작은 방을 얻어 한 동안 어렵게 살았습니다. 출가한 딸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친정의 어려운 시기에 큰딸을 낳고 보니, ‘난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나는 내 삶의 해답을 알지 못하고 헤매는데, 이 아이에게 난 무엇을 해줄 수 있지?’

이런 저런 두려움 속에 지내다, 딸아이가 돌이 되었을 때, 전화번호를 뒤적이다 잊고 있었던 영화언니 이름을 보게 되었습니다. 중고등부 시설 교회를 같이 다니며 친하게 지냈던 언니인데 잊고 있었네..... 저는 무엇에 홀린 듯 전화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연락한 건데 언니는 어제 본 사람처럼 전화를 받았습니다. 언니는 우리 집 근처에 살고 있었고 정말 편해 보였습니다. 언니를 다시 만나고 언니를 통해 근처에 살던 00자매를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이 서로 위하고, 두 가정이 서로 섬기고 사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저와 딸은 두 가정의 사이에 끼어들었고 두 가정은 반갑게 저희를 맞이하고 복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교재를 통하여 제가 놓아 버렸던 말씀을 다시 보게 되었고 언니들만 가지고 있는 확신과 평안을 하나씩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001년 분당북부교회 겨울수련회 써니랜드에 딸아이를 놀게 하려고 참석했을 때, 황형제님과 교제하면서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복음말씀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며 교제하던 중에 한 말씀에 눈이 멈추었습니다.

히브리서10;10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4-18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이후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 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다른 말씀은 기억나지 않았는데 이 말씀은 내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신 것처럼 분명했습니다.

‘아! 나는 더 이상 제사드릴 것이 없구나’

영원한 구원을 알지 못한 채 날마다 제사를 드렸던 나의 모습을 알게 되면서 짐이 가벼워진 느낌이었습니다. 분당북부교회의 첫 열매라고 하시면서 함께 기뻐해주셨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난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하나님을 믿는 것도 나라고 생각했는데, 구원의 순간을 보니, 유년시절부터 임종 시까지 손주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해 주신 할머니의 기도, 시골동네 언니들의 기도, 북당북부교회의 성도들의 기도가 일을 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인생을 결정하고 산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 길 조차도 주님께로 오기 위한 길이었습니다. 주님은 나의 마음을 온전히 얻기 위해 기다려주셨고,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덧없이 흐르는 인생 같고 하루가 똑같은 날들 같았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주님과 분리된 삶이 어떠한지를 분명히 알게 하셨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구원 받고 아무 것도 모르고 투덜대는 어린 아이 같은 시간도 나에게는 필요했었고, 내가 나를 정죄하는 방황의 시간을 통해 나의 교만함을 알게 하는 시간도 있었고, 직장에서 사랑하지 못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내가 지쳐 주저 않을 때 함께 할 수 있는 섬김의 가정을 붙여 위로해 주셨습니다.

저는 기도와 섬김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저는 지금 연약한 육체 안에 실수도 하지만 내 안에 나는 없고, 오직 주님만 사는 삶을 새로운 인격체로,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도록 내 안의 성령께서 바른 정체성 위에 세워가십니다. 아들로 살 수 있도록 교회 안에서, 또 가정에서 함께 지어져가게 하시는 주님을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사랑이 생수의 강이 되어 흘러넘치기를 원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주님이 보이시고 말씀하신 것에 순종하는 삶, 그분의 자취를 따르는 삶을 살길 원하며, 하루하루 주님을 향한 사랑이 커짐을 느낍니다. 미천한 인생을 이끌어오셨고, 앞으로 영원한 나라로 이끄실 주님께 무한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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