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방황하는 길은 벧엘로 향하기 위함입니다 (28장 묵상)
그 곳은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의 꾀로 이루려다가 에서에게 쫒기던 길에서 쓰러져 잠든 곳이었습니다. 루스는 ‘살구나무, 길을 잘못 들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대면했습니다.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선택하여 내딛은 길에서 지쳐 쓰러진 그 자리가 공교롭게도 루스였습니다. 그는 쫒기던 길이었지만 그곳에서 하늘로 향한 사다리 위에 계신 주님을 뵙고 그곳을 벧엘로 불렀습니다.
나그네 길에서 자기가 벤 돌을 기둥으로 세워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을 ‘하나님의 집’으로 불렀습니다. 이는 루스와 같이 길 잃은 야곱의 인생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사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살구나무(솨케드)는 근동지방에서 꽃을 가장 먼저 피워 계절을 알리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각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한때 예레미야도 주의 부르심을 받을 때 살구나무를 보고 각성하였습니다(렘1:11)
그래서 성소의 등대가 살구나무로 만들었고 법궤를 담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바로 이 나무였습니다. 곧 사람의 어둠과 부당한 주권을 하나님의 주권과 의로 비취고 교정하기에 합당한 나무였습니다(출25:31).
야곱의 생애는 이 경험을 전후로 나뉘게 됩니다. 이 후 그의 인생노정은 이곳에서 맺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과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다나엘에게도 나타난 이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려질 교회를 말합니다.
그는 단지 현재의 상황을 수습해 주시면 십일조를 드리겠노라고 가당치 않은 약속을 했지만 하나님은 쫒기던 그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계승자로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아직 하나님의 언약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해 겨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이후부터 하나님이 상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같이 성도의 삶에서 겪는 곤경이 비록 연약함 때문일지라도 모든 일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사람이 되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길을 잃고 쓰러져 잠든 ‘루스’에서 만난 하나님이 우리를 벧엘로 이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