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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대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41장 묵상)
요셉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은 그가 기대한 것보다 늦었지만 보상은 컸으며 그의 생각과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지만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구원은 개인적이었지만 목적은 세상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때 그가 생각한 구원은 술 맡은 관원에게 무죄를 탄원하고 선처를 호소하여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었으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보이신 꿈을 이루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동안 그가 가졌던 인간적인 기대와 희망은 다 사라졌을 것입니다. 갈등과 회의로 고통했지만 하나님은 이 기간을 통해서 그를 연단하시고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비로소 요셉은 잠잠히 감옥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였고 2년이 더 흘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셨고 술맡은 관원은 잊었던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를 불러올리셨습니다.
사실 보디발의 집의 집사에서 애꿎게 왕의 감옥에 갇힐 때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왕의 감옥에 갇혀있던 정치범들을 섬기면서 세상의 이치를 볼 수 있는 학식과 소양을 갖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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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성공이나 야곱의 곤경은 모두 같은 것입니다 (창 42장 묵상)
요셉의 이야기로부터 야곱의 가족으로 장면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야곱의 인생에 기근이 닥쳤는데 이를 통하여 요셉에게 보이신 꿈은 실현되었고, 형들은 그들의 행실을 뉘우쳤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의 후손들을 통한 구속사를 이루시려고 애굽과 온 세상에도 기근이 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요셉을 먼저 보내시고 야곱의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시키셨던 것입니다.
이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나라로 번성케하시고 또 애굽을 나오면서 백성으로 훈련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이 땅에서 겪는 모든 일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가 지금 땅에서 겪는 모든 일은 그 자체가 결론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온전한 뜻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므로 성도는 이 땅의 성취로 교만하거나 고난 때문에 낙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 도덕적으로 살아왔고,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겼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에게 그럴 수 있는가?‘하고 묻습니다. 이는 아직 구원의 목적에 무지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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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아니라 실은 하나님께서 이끌고 계셨습니다 (43장 묵상)
기근은 더욱 심해갔고 야곱의 자식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다시 애굽에 내려가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요셉을 구원자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불편해도 그에게 나아가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베냐민을 요구했기 때문에 지체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베냐민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야곱이었습니다. 나그네 길에서 집착하던 아내의 마지막 혈육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막판에 가서야 야곱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속에서 일어났고 또 자식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맡겨야 함을 알았습니다.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라’ 사실 그의 집착이 하나님의 일을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오늘날도 많은 신자들이 구주를 만나 심판을 면했으니 대충 안주하고 정작 주님께 나오기는 꺼려합니다. 그러나 중생의 씻음은 인정해도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무시하는 것은 근심스러운 태도입니다(딛3:5).
하나님은 그렇게 자기백성을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환란과 기근을 만나게 해서라도 주님 앞에 세우고야 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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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이룬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세상 역사입니다 (45장 묵상)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을 애굽으로 보내 400년간 종살이를 하게 하시고 4대 만에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15:13). 그 일을 위해 요셉이 먼저 종으로 팔린 것입니다.
피 묻은 옷으로 진실은 덮힌 듯하고 거짓말은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악한 도모로 요셉이 팔리고, 옥에 갇힌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고 온 세상에 일어난 기근조차 무대장치였습니다.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 분에 의해 주관되고 있으며, 그 분의 정하신 뜻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길이 최선이고 복된 길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팔았지만 그 일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을 야곱으로부터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역사로 분별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형들이 죄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형들의 악을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을 요셉이 안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고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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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요셉과 유다를 통해 나타난 구속의 영광 (44장 묵상)
요셉은 다시 형제들의 곡식자루에 돈을 집어넣었습니다. 본문을 읽다가 재차 이일이 반복되는 이유를 생각하던 중 순간 빛이 보였습니다. 그는 형제들의 중심을 확인하고자 한 것입니다.
전장에서 야곱이 나그네 길에 마지막 남은 집착인 베냐민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심하자 요셉을 대면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구원자께 나아오기 위해 해묵은 죄를 다루고 계셨던 것입니다.
형제들은 시기심으로 형제를 돈을 받고 팔았고, 죄를 덮기 위해 아비를 속인 사실을 분명히 고백해야만 했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성도의 자백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시키는 사역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구원 곧 곡식을 얻기 위해 다시 형제를 팔려는지를 알고자 한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믿음의 목적인지를 부단히 확인하시는 분이심이 생각났습니다.
무엇보다도 공의를 요구하는 구원자의 모형인 요셉의 사역의 엄위함 속에서. 형제의 생명을 담보하는 유다의 사역을 통해 구속의 은혜가 영광스럽게 빛나며 완전한 구속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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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 근거해야 합니다(46장 묵상).
야곱은 그토록 사랑하였던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되어 살아있다는 말을 듣었지만 그는 먼저 브엘세바에 가서 희생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브엘세바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아브라함은 땅을 한 평도 갖지도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우물을 팠던 곳입니다. 그곳에서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입니다(21:33).
우물을 판다는 것은 정착한다는 뜻입니다. 수명이 길고 단단한 에셀나무를 나무를 심은 이유는 하나님과 언약의 견고함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분께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우물이 정착의 의지의 표현이라면, 나무를 심는 것은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이는 경계의 표시입니다. 곧 브엘세바는 영생하시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땅이라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거했습니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다가 되돌려 받은 곳이며 모리아에서 돌아와 대대로 거주한 곳이었습니다(창22:19). 그리고 하나님은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을 바로 이곳에서 재확인시켜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