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과 중요한 일은 구별해야 합니다 (학개 1장 묵상)
바벨론 포수에서 돌아온 것은 놀라운 은혜였지만 그들이 귀환한 목적은 성전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이르기는 했지만 대적들로 인해 정작 그들은 사명에 미온적이 되었습니다.
성전을 사모하여 돌아왔지만 정착하는 일에 바빠 신앙은 점점 현실에 타협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학개를 통해 그들을 일깨워 성전을 재건하도록 각성을 촉구하셨던 것입니다.
성전은 그들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거처이며 백성 된 근거였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훼파되자 그들도 그 땅에서 쫒겨난 것입니다. 성전이 그들 가운데 있는 동안만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영생의 사귐과 그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근거이십니다. 성전은 사람과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 되신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성소가 없으면 성도로서 자격도 없습니다.
사망의 포로 된 자들을 구원하신 목적은 구원 자체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때처럼 대적은 지금도 이 건축을 방해하고 손을 약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정착하는 일에 몰두하다보니까 더 이상 주의 몸을 세우는 사명은 잊혀지고 그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해야하는 줄을 알겠는데 상황을 살피느라 변명을 앞세우고 실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건축이 지연된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게으름과 안일함 때문이었습니다.
성도를 성도답게 만드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성도의 삶이 하찮아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결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의 중심이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생활은 주의 몸을 중심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성도의 존재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지도록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심고 세운 것들은 모두 잃어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하찮게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아무리 애써도 우리의 시간과 도모를 허무하게 만들어버리십니다. 삶이 속절없이 느껴지는 이유는 다름아닌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