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의 원리 (3장 묵상)
한때 니느웨 백성들은 요나의 경고를 듣고 하나님께 회개하자 심판이 거두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요나의 때도 충분히 심판하실 만큼 죄악을 채웠지만 하나님은 멸망보다 회복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나훔의 예언대로 멸망한 것은 그들이 죄악으로부터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니느웨의 죄는 '피로 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2:12)한 것인데 이는 그들의 포악과 교만을 말합니다.
그들은 세상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폭력적으로 빼앗는 것이 정당했습니다. 그래서 정작 멸망당할 때 아무도 그를 슬퍼해주지 않고 도리어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궤휼(거짓말)과 폭력으로 위협하여 탈취했습니다. 또한 자기들의 힘과 부를 가지고 미혹하여 그들의 신을 섬기도록 했습니다. 결국 함께 망하게 하였으므로 멸망이 불가피했습니다.
열국의 신들 중에서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신이 어디있느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한 때 회개했던 하나님을 이같이 대적하고 주의 백성을 모욕했습니다.
앗수르가 멸망시킨 애굽의 수도 ‘노아몬’처럼 그들도 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판은 언제나 고집과 회개치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의 일관된 진노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믿고 의지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무너뜨림으로써 심판하셨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힘을 믿자 악을 행한 것이라서 그들이 힘을 하나씩 꺾어버린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땅에서 미리 하나님 외에 의지하던 것에 대해 아침마다 징계 받았기 때문에 세상과 함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일상의 익숙한 처신과 길을 하나님 앞에서 살피는 것은 그래서 소중한 것입니다.
나훔은 주를 대적한 세상에 대해서는 심판을 경고하지만 주의 백성에게는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의 메시지를 전하며 위로와 영광을 회복시켜 주신다고 선포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