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설득하시는 하나님 (4장 묵상)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안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을 객관적 지식일 뿐 하나님의 엄위하심과 공의를 모르는 천박한 지식이었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자기가 미워한 앗수르를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거부했던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지만 공의와 영광의 하나님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조차 도구로 여기고 삶을 방종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생각과 입장은 놀라우리만큼 집요하고 견고합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도 사명도 안중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이럴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고 악다구니한 것입니다.
그런데 감동이 되는 것은 이런 하찮은 사람의 의지와 다투시고 설득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를 반복해서 물으시며 생각대로 되지 않아 떼쓰는 사람과 대화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겨우 낮의 열기를 가린 박넝쿨로 인해 심히 기뻐하였다가 벌레가 먹어 시들고 다시 혼곤해지자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소연합니다. 하나님은 비로소 요나에게 정당치 못한 생각을 되물으셨습니다.
‘네가 수고나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서를 묵상하며 주의 명령을 받고도 자기 뜻대로 하기 위해 도망가고, 복음을 전해놓고도 미워하는 대상이 망하는 지를 보려고 기다리는 요나의 불의한 성품을 견디신 하나님이 보였습니다.
니느웨의 회개와 구원의 역사가 놀라운 것보다 하나님을 대적한 자기 종의 뜻과 의지가 이렇게 억지스러운데도 포기하지 않고 대화하시며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이 놀랍게 다가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