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3장
노래를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 왜 송구스러움이 느껴지는 것일까요 (3장 묵상)
화가 있다는 말은 멸망당할 악인이 받을 저주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극히 조심스러운 표현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스바냐를 통하여 놀랍게도 자기백성에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2). 곧 백성이면서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거절하고 도움을 청하거나 교제조차 거절하였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를 다스리는 자들은 포악하였고, 선지자들이 경솔하고 간사하여 거짓말로 하나님과 사람을 속였으며, 제사장들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성소를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계셔서 아침마다 자신의 공의를 그들에게 나타내보였다고 하셨습니다(5)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책망과 교훈을 받지 않았고 빛 앞에서도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백성 중 악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생각과 길을 교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교훈을 받아 행위를 고치는 사람입니다(7) 그렇기 때문에 심판이 작정되었어도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열방을 벌하는 심판의 때까지 인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하나님은 먼저 자기백성에게 순수한 말을 돌려주어 온전한 예배와 성도간의 교제를 회복시키신다고 하셨습니다.
예배와 교제가 교만한 자들로 인해 훼방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제하신다고 했습니다(11)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곤고하고 심령이 가난한 참 백성만을 남기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 얻으신 자기백성들 중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사랑하시며 비로소 그들로 인해 안식하시고 기뻐 노래를 부르신다고 하십니다(17).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또 노래하신다는 말씀에 그만 송구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얼마나 자기 백성을 얻기 사모하셨을까 하는 주의 열망앞에 느낀 황송함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