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가 쉬우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그 집보다 말의 권세가 더 크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듣는 이가 말에 합당치 않으면 되돌아오고 나중에 그 말을 받지 않음으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을 하도록 만드시는 분이 아버지의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하는 말은 성령이 관여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말을 조심히 하고 낸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며 하나님께서 말을 들으시고 시행하실 뿐 아니라 이 말로인해 듣는자는 망할 수도 있고 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행복은(Happiness)은 ‘Happen’에서 유래된 것으로 ‘요행 혹은 행운’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행운은 진정한 복이 될 수 없습니다. 복(Bleeding)이란 단어는 ‘피 흘리다’는 의미의 ‘Bleeding’이란 단어에서 기인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피 흘린다’는 말을 복이라고 불렀을까요?”
참된 복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해의 피가 흐려지고 나면, 비로소 사람이 하나님을 통해 복을 누리게 되는 의미가 됩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사람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우선 죄로 인해 하나님과 화해를 해야 하는데, 죄는 반드시 피 흘림 곧 심판을 요구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거절하고 각기 자기를 섬기려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무법하고 어리석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독생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사람에게 내어주셔서 십자가에서 죄인의 생명을 대신하도록 하셔야 했습니다.
이제는 아들의 흘리신 피가 사망에 처한 모든 사람의 죄를 덮고 화해할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당신이 만일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온다면, 자녀로 받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분당북부 전도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