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애굽에서 구출된 목적은 성막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살았고 성막은 곧 그들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존재 가치는 오직 성막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하게 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막을 세우는 일만큼 중요한 게 또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막을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듯이 성막은 한 장소에 고정될 수 없었습니다.
장소가 아니라 그들 중에 계신 것을 알려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명하신 곳으로 하나님의 성막을 해체하고
이동하는 일은 제사처럼 매우 신중하게 진행 되었습니다
단지 이사를 하는 정도를 넘어 성경은 의도적으로 이 일을
엄정히 다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일은 복음과 교회의
본질을 적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만하면 되었으려니 싶으면 어김없이 구름이 떠오르고
그들은 익숙한 환경을 둔 채 장막을 걷고 떠나야 했습니다.
성막은 사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처소이며
어디든지 그의 임재가 있기 때문에 거룩할 수 있었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자기들을 위한 하나님을 찾던 사람들은
애굽을 나왔어도 광야가 그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습니다.
복음과 교회도 사람의 편의를 위한 것이 되어버리면
어김없이 소망이 희미해지고 복음도 공허한 구호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정말로 배워야 하는 것은 복음과 교회가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레위 장정들이 오직 성막을 어깨에 메고 광야를 걷는 동안
가족들은 불평 없이 그들의 장막을 지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 일을 위해 애굽에서 그들은 불러낸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레위인들은 이 일과 연관된 것 외에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일의 가치도 주님과 연관 되었는지로만 평가되어야 합니다.
분가는 익숙치 않는 환경으로 옮겨야 하는 불편함과 사람을 섬기기 위해 희생과 수고가 뒤따르는 순례의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새로운 곳에서도 주의 임재를 증명하고 세워야 할 레위지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오면서 증명한 복음과 세운 교회는 오롯이 우리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흔적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