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아는 것과 복음을 통해 주를 아는 것은 별개이다
복음을 아는 것은 잘 설득하고 이해시키면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복음을 통해 주를 알려면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대개 복음을 전하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으니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시작한다
그리고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당신이 죄인이라고 지적하는 무례함을 피하고
보편적인 인류의 죄의 결과를 말하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속의 원리를
이해시키면 된다. 그리고 율법을 통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고 부담스러우니
하나님이 준비해두신 손쉬운 구원의 길로서 믿음과 영접의 과정을 되도록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받아들이게 하면 소위 복음을 아는 신자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좀 더 진지하게 복음을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천국과 지옥 중에서
어디서 영원을 보내기를 원하는가를 묻고 기왕이면 좋은 데로 가라고
제안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지옥이 실재하니까 끔찍한 사후를 피하도록
구원을 얻으라고 말할 수 있다. 내친 김에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죽으신 사건을 실감나게 소개해 감동을 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모든 과정을 다 동의하고 믿는다고 고백해도 거짓된 신자일 수 있다.
구원이란 성경에서 일관되게 죄로부터 구원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죄를 사랑하고 그것에 여전히 머물기를 원하면 심판을 면했다고 믿는다면
아직 구원이란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아들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복음이 완성되는 것은 아들을 통해서이고
아들을 통해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의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전에 사람들은 자기들의 선행을 의라고 불렀으나 복음은 하나님과 사람이
믿음 안에서 맺은 관계를 의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천국을 가기 원하는가라고
묻지 말고 하나님을 원하는가? 그의 앞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거듭난다는 것도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고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을
거듭남이라고 한다면 거듭남의 의미는 조정되어야 한다. 나라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거듭난 사람이란 하나님의
통치와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다. 깨달음을 얻었으니 장차 천국에 들어가게 된
자격을 갖게 된 것이 거듭남이라고 여기는 것은 비성경적인 가르침이다.
거듭남 사람은 누구보다 죄를 미워하고 아들을 잘 알고 친밀한 사귐이 있으며
그와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는 사람일 것이다. 그의 통치 안에서
절제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살고 복스러운 소망을 기다리는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