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에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전투는 법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법을 사단이 문제를 삼았고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저버리고 범법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흥망성쇠는 철저히 법 때문이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과 통치의 도구로 수여되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오로지 그들의 교만과 특권의식을
부추키는 장식물로 여겨 마음으로는 주를 복종치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법 때문이었습니다.
율법의 외적준수만으로 외식하던 백성에게 율법의 권위를
회복시키셨고 일점일획조차 떨어지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이유도 실은 법 때문이었습니다.
창세 이래로 대적에게 공의롭지 못하다는 비난을 감수하시면서도
사람의 죄를 심판치 않고 간과 해 오신 하나님의 법은
십자가에서 지불하신 죄 값을 인해 마침내 온전케 되셨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도 당연히 법 때문이었습니다.
씻겨놓아도 아직 삶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죄의 세력과
죄를 아직 연연해하는 바로에게 길들여진 성품 때문에
주는 사람 안에서 의를 이루시기 위해 다시 사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이 땅에 살아있는 이유는 법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제물이 되셨습니다.
성령은 이 일을 위해 지금도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의 삶이 연장될수록 사람 안에는 죄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용서 받았으니 죄를 심상히 여길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악하고 배은망덕하기 이를 데 없는 무서운 자기기만입니다.
지금도 흐르는 주의 피는 우리를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세우시고
성도에게 넘치게 주신 은혜는 주의 법을 사랑하게 만드시는
영혼의 노래로 바뀌어 부르게 하십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 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