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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지탱하는 세 받침대


복음의 시작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것에 그치지 않고 대상을 향한 인격적 관계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구원을 설명하는 어떤 말을 다 동원하고 그에 대한 지식이 생겼어도 인격적인 대상을 향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으면 아직 시작이 안 된 것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사랑입니다. 십자가를 두고 하나님은 사람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나타내셨고 사람은 이 사랑에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은 성도의 삶의 동기와 유일한 동력입니다. 사랑하지 않고 견딘 부부관계처럼 고통스런 것이 없듯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채 이룬 어떤 열심과 성취도 사실은 공허하고 무의미한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마침내 복음은 소망으로 구원에 이릅니다. 부부가 인생을 바라보는 목적지가 같아야 하듯이 믿음은 사랑으로 성숙하고 소망으로 확인됩니다. 40년을 생사고락을 함께 한 혈육이었지만 불같은 광야를 지나고 주검을 뒤로 하며 함께 걸은 길을 지나면서도 영원한 것이 소망이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로 이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옵소서’

사람이 길을 나서도 목적지만큼만 걷듯이 믿음의 길도 목적한 범위까지만 가려고 들것입니다. 사람은 정말로 가치가 있다고 믿는 만큼만 행하는 법입니다. 그들이 자식과 가축을 남겨둔 곳 그곳까지만 신앙의 범위에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경계선에서 그들은 목적지가 갈렸습니다. 그들이 눈에 소유를 지켜내는데 적합한 곳에 이르자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의 관계가 무의미해졌습니다. 그들이 정말로 사랑한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나 버렸습니다.

어떤 사물이든 균형을 잃으면 쓰러지고 맙니다. 최소한 세 개의 다리가 있어야 모든 것이 균형이 잡히듯 참된 복음도 세 개의 다리로 지탱이 됩니다.

우리에게 정말 이 믿음과 사랑과 그리고 소망이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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