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롯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것은 그에게 내려진 신학적 임무 때문이었다.
그의 배신으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인간이 구원을 받게 됐다.
그는 악역을 맡아 희생한 것이다."
1800년 만에 발견된 유다복음서라는 것 때문에 세간이 시끄럽습니다.
벌써부터 호사가들은 불순한 말잔치를 시작한 듯 합니다.
다빈치코드니 뭐니 신성모독적인 이슈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드러난 것보다 그 논리가 교묘해서 한 자 적어봅니다.
이것의 주장에 의하면 악을 하나님께서 계획한 것처럼 들리고
악도 선한 목적에 사용되면 그다지 나쁜 것이 아닌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악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을 왜곡함으로써 생겨난 것입니다.
설령 악이 선을 드러나게 했을지라도 악은 불의의 보응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마치 소방관의 선행이 드러났을지라도 방화가 죄 인것과 같습니다.
이런 주장이 위험한 것은 사람의 불순한 지적 호기심을 부추키기 때문이며
금새 하나님의 거룩이나 사단의 존재를 시시하게 만들고 선과 악의 구분도
무의미해지도록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다복음서의 주장은 드러난 내용이 가진 불순한 것보다도
그 주장이 품고 있는 논리의 함정이 유다만큼 치명적이고 위험합니다
논리는 진리와 달리 함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신앙이 논리에 근거하면 필연 더 정교한 이치를 만나면 흔들리고 맙니다.
말의 논리란 누가 사용하는가에 따라 천지로 차이를 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살아있는 관계를 누리고 진리에 닿아있는 사람만이 무성한 배도의 논리속에서, 엄청난 기적과 체험의 홍수를 견디어내며 순결한 영성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