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하나님이 줄로 재어준 구역은(민34소고)!

사해를 기점으로 측량해서 사해까지 허락되었습니다. 사해는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땅이요 하나님의 심판이 불로써 집행되어져서 후대의 경계를 준 곳이었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사해가 척량의 중심일까요?

그것은 심판으로 시작되고 심판으로 한정되지 않으면 그들은 한 치의 땅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그 땅이 아무리 아름답고 비옥했어도 주의 백성들은 반드시 이 점을 경계로 삼아야 했습니다.

구원이 심판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참된 의와 평안을 갖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침례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담으시고 심판과 저주를 그 위에 부으심으로써 죄인들이 살아나 사건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공의로운 심판을 통해 주신 은총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들을 사랑하며 죄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믿음의 경계선을 그어가는 것입니다.

의는 다름 아닌 아들 안에 머묾으로 인해 얻게 된 신분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상태가 아무리 흔들려도 받으신 심판으로 인해 이 의는 영원히 안전하다는 무겁고 숙연한 진리를 증거합니다. 반드시 참된 구원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만 합니다.

이렇게 경계선은 그어져 그 측량은 대해와 애굽시내를 돌아 다시 사해까지 왔습니다. 그 종점은 다시 사해였습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이란 모두 심판 받은 것입니다. 오직 그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것만 기업으로 주어 질 것입니다.

그날은 비할 데 없는 감격과 소망의 날이기도 합니다 아들께서 기업을 보상하시는 심판주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아들께만 자신을 알리고 묵묵히 섬김의 삶을 산 사람들에게는 그날에 받을 기업은 실로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심판하신다는 사실은 두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아들로부터 시작되지 못한 신앙과 눈에 보이는 대로 좇은 삶과 아들이 동기가 되지못한 채 벌려 놓은 일들과 계획은 옛날처럼 그날에도 초개처럼 살라질 것이 때문입니다. 심판의 경계선을 아들만큼 잘 아실 분이 없을테니까요..

조회수 30회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마가복음 4:12

“이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사 언제라도 그들이 회심하여 자기 죄들을 용서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마가복음 4:12)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치 아니하리라

마음의 안식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11:28-30) 주님이 “안식(구원)”을 위해 내게 오라고 하신 것은 사람이 수고와 짐이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인생을 살기 위함에서

말의 권세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