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모이와 베미드바르는 민수기의 두 이름입니다.
각각 '인구조사'와 '광야에서'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탈무드에서는 인구조사라는 뜻에서 나온 민수기로 쓰지만.
맛소라 사본은 ‘광야에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광야에서’라는 제목은 텐트를 치고 다시 걷어 이동하는
순례의 여정을 통해 영생의 준비과정을 강조하고
민수기라는 제목은 구원이 갖는 특별한 목적을 보여줍니다.
민수기에는 두 번의 인구조사가 나옵니다
첫 째는 출애굽이후 2년 만에 시내산에서 시행한 것이고
두번 째는 모압광야에서 40년 만에 기업 분배를 위해서입니다.
첫 번째 인구조사는 전투에 나갈만한 자를 세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원이 평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서운 기만입니다. 오히려 영적인 싸움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광야길을 40년이나 걸었어도 어려울 때마다 뒤돌아보고
평탄치 않은 길을 인해 불평하고 원망하며 아쉬워하는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길에서도 앞을 내다보고
가나안을 조바심하며 사모하던 사람은 오직 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길이 가파르면 원망하며 모세를 대적하였고
오래 머물고 익숙해지면 음행하고 우상숭배하였습니다.
'광야에서' 고스란히 그들의 마음을 노출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안식할 땅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삶의 과정 내내 하나님의 약속을 소홀히 하고 세상을 향했던
사람들에게 그 땅에 들이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두 번째 조사는 땅을 분배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구원 받은 자들이 걷는 길은 반드시 보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조사는 가족을 따라 헤아려졌습니다.
보상의 근거는 죄와 싸우면서 순례의 길을 걸었는가 였습니다
전투를 수행한 자들과 그 가족에게만 주어졌습니다.
그 거칠고 두려운 광야를 40년이나 걸었지만
두 번째 조사에서 놀랍게도 거의 인구는 줄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목이 곧고 견디기 어려운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확고하고 어김없이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처음에 약속을 받았던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사실은 이것입니다.
교회가 받은 이 놀랍고 엄청난 약속과 보상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대가 교회의 영광을 대신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약속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세대의 사람들도 광야에서 엎드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말 그 약속과 부르심을 향해 가는 중일까요? 그들이 약속에 대한 기회를 잃어 버릴 수 있었다면 우리는 무슨 근거로 우리의 종말을 낙관할 수 있을까요...